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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박정희 - 12회
배상금 김대중이 받았다면 어디 썼을까?
 
김동문 논설위원
 
우리가 받은 배상금이 얼마인가? 무상 3억 달러가 전부인가, 아니면 8억달러가 전부인가? 8억달러 이외 더 있는가? 국교가 정상화되고 박 대통령의 일자리 불리기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포항제철에 들어간 기술 대부분이 일본 기술과 자재였다. 국가 전체에 유입된 일본과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비교해 보면 7:3으로 일본이 앞섰다. 박정희를 비하 하려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일본의 기술 및 자본 유입을 경제적 침략이라고 생각하고있다.
 
이런 사람들은 박정희를 거론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이 없었다면 1997년도에 이룩한 1만 달러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제조업을 둘러보자. 눈에 보이는 비용은 불과 몇 개에 불과하다.
 
재료비, 인건비, 보증수리비, 검사비, 하자수리비, 테스트비, 재작업량, 반품및 폐품처리비들이 바로 눈에 보이는 비용들이다. 그러나 장부에 잡히는 이런 비용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욱 크다.
 
한.일협정으로부터 들어온 이익 역시 이러한 식으로 무능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많이 바아내자고 떼를 ㅆ고 있는 동안 한국을 지지 했던 미국의 마음이 식상해질 수도 있으며 기다릴수록 기회만 놓치고 시간만 허송한다.
 
만일 기다렸다가 그 배상금을 김대중이 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다른 대통령들이 받았다면 그들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자기들이 뜯어가고 집행과정에서 온갖 세도가와 사기꾼들이 달려들어 줄줄이 새어나갔을 것이다. 
 
고쳐야 할 한국인의 정신
 
덴마크! 인구는 겨우 5백만, 국토는 한국의 5분의 1, 땅은 모래밭과 황무지, 그러나 지금은 국민소득 3만3천 달러의 선진국이다. 1813년부터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곤궁할 대로 곤궁해진 터에 또 다시 영국과의 7년 전쟁을 치르면서 넓고 비옥한 땅을 모두 빼앗겼고 남은 것은 노약자와 부녀자 뿐이었다.
 
절망속에 일할 마음도 없었다. 이때에 나타난 '그룬트비란' 이 정신적 혁명을 일으켰다. "밖에서 잃은것을 안에서 찾자" 국민정신이 바뀌자 국가가 바뀌었다. 한국인 졸부가 일본 최고의 호텔에 머물면서 최고로 비싼 그림 한점을 배달 시켰다.
 
배달원은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포장지에 약간의 자국을 가리켰다. 싸고 또 싼것이라 그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일본인들은 포장도 상품으로 취급한다.
 
용서만 해주신다면 금전적 보상은 얼마든지 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한국인은 순간적으로 욕심이 발동했다. 그림값에 버금가는 많은 돈을 요구했다. 배달원은 그 많은 돈을 내놓으면서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나갔다.

전남조은뉴스 주필
kjb방송. 한국장애인신문 주필
[주} 뉴스타운 논설위원
(사)월남참전 전우회 전남초대회장(89-91)
5.18실체규명위원회. 고문
 
 
기사입력: 2005/06/30 [22:08]  최종편집: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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