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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박정희 (9)
일자리 만들기, 누구도 흉내 못내
 
김동문 논설위원
 


 
세계인들은 뉴딜 정책이 8백만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두고두고 칭송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일자리 만들기는 이보다 훨씬 더 기막히다. 앞이 불투명하던 그 시대에 어떻게 기능공을 양성해서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할수 있었는지에 대해 필자는 지금도 혀를 찰 만큼 감탄하고있다.
 
첫째, 그는 기능학교들을 만들어 기능공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들 기능공들의 친구가 됐다. 기능공들은 국제 기능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게 소원이었다. 매년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공장장이 사장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고 "대학가야 소용없다 기술을 배워야 대우를 받는다"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유행어가 되었다.
 
외국에 특사들을 내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들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의 약속을 신뢰한 외국 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와 공장을 지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하는 일이라 중간에서 공무원들이 장난질을 못했다. 한국이 조립을 많이해서 팔면 그만큼의 부품과 소재들을 앉아서 팔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짓는것은 외국기업에게 또 다른 매력이었다.
한국의 일자리는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둘째, 한편으로는 대규모 공단을 지어 기업인들을 입주 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기업들에게 외국에서 사양화돼 가는 수많은 제품들에 대한 기술도면을 얻어다 주었다. 그러나 공장에는 외국어로 쓰여진 기술자료(tdp)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는 외국에 나가 있는 과학기술자를 대거 유치하여 기업을 지도하게 했다. 생활 필수품마저 고갈됐던 당시엔 한동안 물건이 없어서 못 팔 판이었다. 굶주린 배에 한없이 음식이 들어가듯 만들기만 하면 모두 팔렸다.
 
공장을 가진 기업들은 한동안 땅짚고 헤엄치듯 돈을 긁어 부자가 됐다. 기업은 날로 번창하고 생산설비는 더욱 팽창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9회끝>

전남조은뉴스 주필
kjb방송. 한국장애인신문 주필
[주} 뉴스타운 논설위원
(사)월남참전 전우회 전남초대회장(89-91)
5.18실체규명위원회. 고문
 
 
기사입력: 2005/06/27 [10:16]  최종편집: 1970/01/01 [09:33]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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