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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박정희 (8회)
월남전이 경제 개발의 초석이 되고..
 
김동문 논설위원
 


1965-75년까지 9년간 중동건설 수주액은 불과 2천4백만 달러였다.74년도에 8천9백만달러, 75년에는 7억 5천만 달러 76년은 24억 3천만 달러, 77년은 33억8천7백만 달러, 78년에는 79억8천2백만 달러를 기록 했다.
 
오늘날의 기록과 비교해 보라. 그 엄청난 기술과 해외 수주 기록을 갖고도 현대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건설업이 중동 수주에 냉대를 받으면서 줄줄이 도산하고 있지 않은가?
 
박 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에 한국은 일자리가 없었다. 당시의 공식 통계만으로도 실업률은 63년 29.9% 64년 29.7%였다. 공장이래야 겨우 제분,제당,제약회사가 전부이고 기계공업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손톱깎이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강도와 정밀도를 규정하는 스펙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사회전체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청년들에겐 앞길이 막막했다.
 
박 대통령은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경부선,땜공사,발전소등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학교들을 세워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 했다.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 했다.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박 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들을 내 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들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을 신뢰한 외국 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와 공장을 지었다. 일자리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물과 한숨의 대명사 "보릿고개"라는 말이 없어지는 순간 이었다.
 
1960년, 필립핀, 태국,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한참 우러러 보이는 선진국, 모두가 우리보다 3배나 더 잘살았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어떠한가? 필립핀은 국민소득 1인당 1천30달러, 우리의 11분의 1이다.
 
인도네시아는 9백68달러 태국은 1천9백40달러, 북한은 5백80달러, 한국은 1만 7천달러, 모두가 한국에 비해 새까맣게 뒤 떨어졌다. 박정희가 이룩한 신화는 기적 그 자체였다.<8회끝>

전남조은뉴스 주필
kjb방송. 한국장애인신문 주필
[주} 뉴스타운 논설위원
(사)월남참전 전우회 전남초대회장(89-91)
5.18실체규명위원회. 고문
 
 
기사입력: 2005/06/23 [22:36]  최종편집: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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