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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박 정 희(朴正熙 ) 7회
월남 파병의 기적- 근검절약
 
김동문 논설위원
 

 
박정희, 진해 별장에서 기자들에게 허리띠를 보여주었다. 닳아빠진 가죽 혁대를 본 기자들은 숙연해했다. 물을 아끼려고 화장실 물통에 벽돌을 넣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은 공장 근로자인 공돌이와 공순이였다. 그는 이들에게 야간학교를 다니도록 해달라며 고용주들에게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서거한 후 그가 단돈 몇푼이라도 감추어 놓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가 도둑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도둑일 것이다. 누구든 박정희를 도둑이라고 주장하려면 증거와 함께 그 자신의 정직과 도덕성부터 공개해야 할것이다.

 
"월남 파병의 기적"
 
1966-72년 월남에서만 직접 획득한 외화는 8억7천2백50만 달러였다. 이가운데 장병 송금액은 1억7천8백30만 달러로 베트남으로부터 송금된 전체 외화의 20.4%에 불과했다.
 
나머지 80%는 베트남으로의 수출, 군납,파월 기술자 송금, 파월 지원경비, 그리고 건설 및 용역에 의한 수입이었다.
 
미국의 후원과 한국군의 맹활약, 월남특수가 일궈낸 "신인도"에 따라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왔다. 원조, 차관, 상품 및 용역 수출의 물꼬가 터진 셈이다.1965-72년까지 외자 도입액은 32억8천8백20만 달러나 됐다.
 
대미 수출은 1964년에 3천6백만 달러가 10년만인 1973년도는 무려 10억2천1백20달러로 28.3배로 도약했다.
 
주한 미군이 한국에 뿌린 돈이 8억달러, 군원이관 중단액이 9천3백만 달러 등 총체적으로 한국군이 월남 특수로부터 거둬들인 경제적 이익은 5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장병 1인당 1만7천 달러씩 국가에 기여한 것이다. 이는 소위 봉급 83년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는 장장 14년간의 교섭 끝에 1965년 6월3일에 얻어낸 대일 청구자금, 즉 무상 원조 3억 달러, 재정차관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 도합 8억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외환 보유고를 보자. 1964년도 외환 보유고는 겨우 1억2천8백만 달러 였으나 1975년에는 15억4천만 달러, 1978년에는 49억4천만 달러로 폭증했다.
 
남북한 1인당 gnp를 보자, 1953년, 남북한 1인당gnp는 각기 67달러와 53달러로 남한이 1.2배 더 높았다. 그러나 1959-65년 6년간은 역전됐다. 남한이 북한의 60-70%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월남이 패망한 1975년에는 남한이 북한보다 1.4배 앞섰고 지금은 29배로 앞서가고 있다. 한국군은 월남의 8개 항만중 5개를 장악하고 있었다.이로인해 월남의 주요공사는 한국 기업이 맡았다.
 
당시 천막회사였던 한진과 현대는 기술도 없이 담요나 모기장, 그리고 급수대책도 없이 무작정 월남땅으로 상륙했다. 한진은 월남에서 1.5억달러를 벌어드렸고 현대는 캄란만 부두공사 5백만달러를 비롯 연평균 1백만 달러 이상의 계약고를 올렸다.
 
1974년초 청와대 오원철 경제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중동은 고온에다 모래 바람이 부는 열악한 땅이다. 금주, 금녀의 땅이라 선진국 근로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가려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수십만의 제대장병이 있다. 월남 참전용사들이 많다. 여자근로자가 만든 상경 공업상품을 수출하여 지탱해 오던 한국경제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7회 끝>

전남조은뉴스 주필
kjb방송. 한국장애인신문 주필
[주} 뉴스타운 논설위원
(사)월남참전 전우회 전남초대회장(89-91)
5.18실체규명위원회. 고문
 
 
기사입력: 2005/06/17 [10:19]  최종편집: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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