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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박정희 (6회)
한일회담 반대시위의 배후는 북한
 
김동문 논설위원
 

1964년 6 .3 한일회담 반대 투쟁, 1965년 8월 한.일 협정 비준 반대투쟁. 1969년 험프리 미 부통령 및 일본의 左蘇수상 내한 반대 투쟁, 1969년 7월 3선개헌 반대 투쟁을 선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1968년8월24일 한국정부에 의해 발각되었다.(73명구속 85명조사중 발표) 모든 반정부 불만을 소요와 폭동으로 교묘하게 연결시킨 배후에는 반드시 지하당의 선전 선동과 전문적인 연출세력이 개입돼 있었다는것을 부정할 수 없다.
 
민주화는 19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 하기 위해 사용한 위장용어 였고,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다. 남한의 민중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으며 4.19를 북한에서는 "4.19 민중항쟁"으로 부르고 실패한 통일 기회로 기억한다.
 
남한에서 발생한 모든 소요 사태의 배후에는 언제나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 한일협정 반대 시위의 배후에도 북이 있었다. 굴욕 외교라고 비분강개한 대학생들의 정서를 이용해 뒤에서 불길을 크게 키운 것이 북이었다.
 
김대중, 김영삼, 문익환, 함석헌, 장준하등이 그 불길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케네디에 돈을 꾸러가고 서독에 가서 광부 간호사와 함께 통곡을 하고 있을 때, 김대중-김영삼-문익환 등은 무얼 했는가?
 
고속도로를 놓을 때에는 알통같은 농지를 절단 낸다고 욕을 했고 국군을 월남에 파병 할때는 젊은이들의 피를 팔아먹는 악마라며 욕을 해대면서 오직 개인들의 정치적 욕심만 채우고 있지 않았던가?
 
김대중! 금강산 사업, 평양 체육관 건설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5조에 가까운 국가 재산을 퍼주었고, 국민 몰래 5억달러 이상의 군자금을 적장에게 바쳤으며 자신은 아방궁을 지어놓고 호화롭게 살고 있다.
 
이런 자에게 당시의 대일청구 자금이 갔다면 김대중은 그 돈을 어디에 사용 했을까? 참으로 아찔해 진다.<이어7회>

전남조은뉴스 주필
kjb방송. 한국장애인신문 주필
[주} 뉴스타운 논설위원
(사)월남참전 전우회 전남초대회장(89-91)
5.18실체규명위원회. 고문
 
 
기사입력: 2005/06/16 [00:50]  최종편집: ⓒ 전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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